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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만 : 제11대 공군참모총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blogout 2025. 6. 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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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만은 대한민국 제11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인물로, 1927년 2월 16일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이며, 일산(一山)을 출생지로 두고 있다. 그는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약 22년간 대한민국 공군에서 복무하였으며, 1970년 8월 1일부터 1971년 8월 24일까지 제11대 공군참모총장으로 재임했다. 배우자는 허현자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종교는 유교에서 불교, 개신교(감리회)를 거쳐 천주교로 개종하였고, 세례명은 그레고리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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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면에서는 일본 육군항공학교, 통위부 보병학교, 미국 육군항공비행학교를 졸업했으며, 국내에서는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국방대학원 행정학과를 수료하였다. 임관은 공군 사관후보생 5기로 시작하여 최종 계급인 대장에 올랐고, 주요 보직으로는 공군본부 인사국장, 제10전투비행단장,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공군작전사령관, 공군사관학교장, 공군참모차장 등이 있다. 특히 공군참모총장으로서 국방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김두만

군 복무 이후에는 다양한 민간 및 학계 활동도 활발히 이어갔다. 금오학원 이사장, 대한통조림수출조합 이사장, 대한종합식품 회장, 한라건설 사장, UBA 인터내셔널 회장,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대한항공 고문, 한국항공대학교 겸임교수, 대붕상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경영과 교육 분야에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국민회의와 자민련에서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 및 고문으로 활동하며 정치 및 안보 분야에도 기여하였다.

김두만은 대한민국 공군의 대표적인 장성으로, 김성룡에 이어 제11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의 최종 계급은 공군 대장이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을 대표하는 전쟁 영웅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 군사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아들은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우이며, 최영희 전 육군참모총장 겸 국방장관과는 사돈 관계이다.

김두만은 1927년 2월 16일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가 세 살 때 돌아가시면서, 삼촌이 있던 일본 교토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학교 시절,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고 조종사를 꿈꾸게 되었고, 1943년 일본 육군 소년비행학교에 입학해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 비행 훈련을 받았다. 당시 주로 탑승했던 기체는 Ki-27로, 급강하와 초저공 침투 훈련에 집중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카미카제로 투입될 뻔했던 경험도 지녔다. 이후 캄보디아 괴뢰국과 베트남에서 일본의 패망을 목격하였고, 프랑스군 관리 하 수용소 생활을 거쳐 1946년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언어 장벽으로 매부의 일을 돕고 고물을 줍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1948년 김정렬의 권유로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잠시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공군사관학교 설립 이전 임시 간부 교육기관인 육군항공학교 1기로 입학해 3개월간의 훈련을 거쳐 소위로 임관했다. 6.25 전쟁 전까지는 L-4, L-5 경비행기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T-6, F-51 전투기를 몰고 다수 출격했으며, 1952년 1월 11일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한 전설적인 조종사로 기록되었다. 김두만은 김신과 함께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에도 참여했다. 전쟁 이후에는 제1전투비행단에서 12전투비행대대장, 3교육비행대장, 작전처장, 1교육비행전대장 등을 맡았고, 공군본부 인사국장, 제10전투비행단 단장,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제2대 공군작전사령관, 공군사관학교장, 공군참모차장 등의 중책을 두루 거쳤다. 1970년 11대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군 경력의 정점에 섰으나, 1971년 실미도 사건으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후임자는 임시소집 2기 출신인 옥만호 대장이다. 그는 무신론자에서 가톨릭 신자로 개종했으며, 세례명은 그레고리오이다.

김두만의 삶은 한국 공군사에 큰 의미를 지니며, 그의 회고록은 김덕수의 저서 『항공 징비록』에 정리되어 있다. 2015년 6월 23일에는 88세의 나이로 국산 경공격기 FA-50에 탑승해 1시간 동안 비행하며, 전쟁 당시 100회 출격 달성 기념 행사를 재연했다. 2020년에는 EBS 특집방송 『하늘의 영웅들』에 출연했고, 같은 해 프로파일럿에도 모습을 보였다. 2023년 국가보훈부와 한미 연합사가 선정한 6.25 전쟁 10대 영웅에 맥아더, 백선엽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으며, 선정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다. 2025년 6월 6일 현충일에는 KBO 리그 두산 베어스 잠실 홈 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 외에도 김두만 대장은 하와이 진주만 태평양 항공 박물관 인근에 전시된 F-5 전투기 캐노피 아래 ‘대장 김두만’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제10전투비행단장 시절에는 군사복지 향상을 위해 기지 공터에 논을 조성해 직접 모내기를 하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생존 중인 전직 장성 중 두 번째로 연장자이며, 공군 장성 중 최고령자로 알려져 있다.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공군 골프장에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며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삶은 전쟁 영웅이자 군사 지도자로서뿐 아니라, 한국 군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장군 공군 민박 부동산 감독 교수 목사 대표 공군참모총장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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