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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 내각총리대신 및 13선 중의원 의원. 그에 대해 알아보자.

blogout 2024. 12. 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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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石破茂, 1957년 2월 4일 ~ )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일본 자유민주당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이자 일본국 제102대 및 제103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정치적 지도자이다. 돗토리현 야즈군 야즈초 출신으로, 그의 정치 경력은 13번의 중의원 의원 선거를 통해 쌓아졌다. 이시바는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미쓰이은행과 목요회에서 활동했으며, 1993년 제38대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농림수산성 정무차관, 중의원 규제완화특별위원장 등을 거치며 정치적 입지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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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는 다양한 정부 직책을 수행하면서 일본 정치의 중요한 순간마다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방위청 장관으로서 일본의 군사적 안보를 담당했으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농림수산대신으로 일본 농업의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자유민주당 내에서는 정무조사회장, 간사장 등의 주요 직책을 맡으며 당의 운영과 정책 방향 설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는 제2차 아베 개조내각과 제3차 아베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으로서 국가전략특구 및 지방창생담당을 맡아 일본의 지역 경제 발전과 국정 운영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2024년 10월 1일부터 2024년 11월 11일까지는 제102대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일본 정부를 이끌었으며, 그 후 제103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여 현직을 이어가고 있다. 이시바는 자유민주당의 무파벌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개인적인 성향은 개신교 신자로서, 가족과 함께 정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지도력은 일본 국내외에서 많은 평가를 받으며, 일본 정치의 주요한 인물로서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정치의 중진,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총리

 

이시바 시게루(石破 茂)는 일본 정치에서 40년 가까운 경력을 자랑하는 중진 정치인이다. 그는 제102대, 제103대 일본 내각의 총리대신을 역임하며, 최근에는 제10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면서 일본 정치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이시바의 정치적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당내 비주류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도전과 고배를 마셨고, 여러 차례 총리 자리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24년 9월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무려 5수 끝에 당선되었다. 그 후, 10월 1일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를 거쳐 공식적으로 총리직에 올랐다.

 

이시바는 방위대신, 농림수산대신, 자민당 간사장 등 여러 중요한 직책을 거쳤으며, 정치인으로서 강한 소신을 유지해왔다. 특히 일본 방위 문제와 관련된 밀리터리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으며, 일본을 국방 강국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 경로는 언제나 당내 비주류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민당 내에서 수차례 총재 선거에 도전했지만, 항상 주류 세력과의 싸움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은 많은 지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결국 2024년 5수 끝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2. 이시바 시게루의 정치적 배경과 취임

 

이시바 시게루는 1957년 일본 돗토리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정치적 경로는 일본의 보수적인 정치적 문맥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일본 내 보수 정치의 핵심적인 요소인 자민당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86년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되었고, 그 후 2024년까지 총 13선의 중의원 의원으로서 활동했다. 이시바는 당시 일본 정치계의 대선배들인 하토야마 이치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과 경쟁하며 중진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정치적 경력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방위대신, 농림수산대신, 자민당 간사장 등의 직책을 거친 그는 일본의 경제, 방위,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방위대신으로서 일본의 군사 정책과 자위대의 역할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유지했으며, 이를 통해 일본의 군사적 독립과 국방 강화를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시바는 일본 내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정치인으로,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에 찬성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한 소신이 자민당 내에서 그를 비주류로 만들었다. 자민당 내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와의 정치적 대립은 이시바가 총리직에 도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이시바는 4차례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패배하며, 총리직에 대한 꿈을 계속해서 미루어야 했다.

그러던 중, 2024년 9월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5수 끝에 당선되며 드디어 그가 오랫동안 꿈꿔온 총리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일본 정치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시바는 "소신과 신뢰"를 강조하며 취임 후에도 강한 지도력을 발휘할 의지를 보였다.

3. 총리로서의 첫 발자국: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이시바가 총리로 취임한 직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실시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이 연합하여 선거를 치렀지만,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이시바 총리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했으며,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치적 도전을 겪으며 자신의 입장을 여러 번 수정했다.

 

예를 들어, 이시바는 총재 선거 당시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중의원 해산을 미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취임 직후 상황이 급변하면서 그는 예정대로 해산을 결정하고, 빠른 속도로 총선을 준비했다. 이로 인해 그가 총리로서의 취임 이후 신속하게 입장을 바꿨다는 점에서 정치적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총선거 결과, 자민당은 예상보다 낮은 의석을 얻었고, 연립 여당인 공명당 또한 전승을 거두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이시바 총리는 총선 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이시바 총리의 연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4. 오타쿠 정치인으로서의 면모

 

이시바 시게루는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만큼이나 독특한 취미와 성격으로도 주목받았다. 그는 방위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진성 오타쿠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밀리터리 동호인으로서 그는 프라모델 제작을 취미로 즐겼으며, 일본의 방위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군사 모형을 만들어 타국 군 관계자들에게 선물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시바는 방위대신 시절, 러시아 국방장관이 일본을 방문할 때 자신이 만든 1/350 스케일의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모 모형을 선물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한 자위대의 중장비와 전차를 포함한 군사 모형을 자위대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며, 일본 모형계의 독특한 취향을 정치적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았다. 이는 그가 단순히 정치인이 아닌, 문화와 취미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임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철도 동호인으로서도 유명하다. 그의 고향인 돗토리현과 도쿄를 오갈 때는 철도를 주로 이용하며, 열차 사진을 찍거나 티켓을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즐겼다. 이러한 취미는 일본의 정치인들 중에서도 이시바만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5. 비판과 논란

 

이시바 시게루는 총리로서 취임 이후 여러 가지 비판과 논란에 직면했다. 가장 큰 비판 중 하나는 그가 자주 주장과 발언을 번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거짓말쟁이 이시바"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의원 해산과 관련된 그의 발언은 취임 후 급격히 바뀌었으며, 이는 정치적 신뢰를 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이시바는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일본의 이웃 국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시바는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피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번 공물 봉납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에 대한 일본 내외의 반응은 그의 정치적 입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개인적인 삶과 가치관

 

이시바 시게루는 정치인으로서의 삶만큼이나 개인적인 면모도 주목받았다. 그는 개신교 신자로, 일본 내에서 극소수에 해당하는 기독교 신자 중 하나다. 그의 외가인 가나모리 미치토모는 일본 초기 개신교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어머니 역시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종교적인 신념이 정치 활동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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