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은 1954년 4월 30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났으며, 사랑제일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본명은 전광훈으로, 그의 본관은 완산 전씨이다. 그는 3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났으며, 배우자 서미영과 결혼 후 딸 전한나와 아들 전에녹을 두었다. 그의 신체적 특징으로는 키 180cm, 체중 105kg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랑제일교회의 고문직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의 의장직을 수행하기도 한다. 전광훈은 또한 자유통일당의 상임고문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정치 및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주목을 받는다.
전광훈은 신학적 경로를 통해 교회에서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었으나, 그가 가진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은 종교 활동을 넘어선다. 대한신학교와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그는 사랑제일교회를 설립하고 담임목사로서 교회 운영을 이끌어왔다. 또한, 기독사랑실천당 공동대표와 같은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하며, 기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여러 사회 운동에 관여했다. 그가 이끌었던 정치적 운동에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의 총괄대표와 ‘4대강보 해체 저지 범국민연합’ 공동위원장 등의 직책이 포함되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신념을 정치에 반영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활동은 그가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영향력과 결합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광훈은 강력한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열정을 가진 인물로, 그를 향한 사회적 평가는 극명히 엇갈린다. 그의 영향력과 활동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행보로 종종 ‘애국목사’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동시에 여러 비판적인 별명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빤스목사’, ‘미치광훈’ 등의 부정적인 별명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광훈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인물로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활동은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전광훈: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전광훈은 대한민국의 종교인, 정치인, 그리고 극우 유튜버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초대 자유통일당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개신교 목사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섰던 설교나 정치적 입장, 심지어 개인적인 행보들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그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단 시비에 휘말렸으나, 이단으로 판정받기까지는 여러 교단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여전히 교계 내에서는 '이단'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광훈은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극우 인물로 자리잡은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으며, 보수 성향의 집회와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정치적인 색깔이 강한 그는 기독교 우파 정치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각종 집회와 시위에서 종종 그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러한 활동들 때문에 그는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동시에, 반대자들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생애와 학창시절
전광훈은 1954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정확한 생일은 생년월일이 변경된 기록이 있어 확실하지 않지만, 공식적으로 등록된 생년월일은 1956년 3월 28일이다. 전광훈은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많은 정보는 전광훈의 증언과 생활기록부를 통해 알려져 있다. 학창시절 그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성적표에서도 후반부에 위치한 성적을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발달사항은 "체구는 크나 어리석고 소변이 잦다"거나, "기질이 온순하나 언어가 명확치 않다"는 등의 표현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는 그가 학창 시절에 얼마나 불성실했는지를 보여준다.
전광훈은 이두초등학교와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부흥회를 찾아다니며 부흥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며, 대신 대한신학교의 야간 학부를 졸업하고 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광훈은 목사 자격을 얻은 이후에도 자신이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며, 나중에 자녀들에게 신학 공부를 시켰다고 전해진다. 그가 운영하던 교회에서 제시한 학위나 졸업증명서는 논란이 되었으며, 일부 교육기관에서 그가 학위와 관련된 허위사실을 제공했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종교인으로서의 활동
전광훈의 종교인으로서의 첫 발자취는 사랑제일교회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전광훈은 사랑제일교회를 설립하며 종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지만, 50대 총회장으로서 밀어붙인 통합 정책이 논란을 일으키며 백석과의 통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교단 내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2019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에서 면직 및 제명당했다. 이후 전광훈은 새로운 교단인 예장대신복원 교단을 설립했고, "제명 직전 교단을 탈퇴하고 새 교단을 차렸기 때문에 목사 직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학력위조 논란을 일으키며, 그를 목사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예장대신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전광훈은 종교적 활동을 지속하면서 기독교 우파 정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8년에는 청교도영성훈련원을 설립하고, 이후 2019년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직에 당선되었다. 그는 2019년 여름, 청와대 근처에서 시국 단식기도회를 열었으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를 조직하여 반문재인 집회를 벌였다. 이때 그는 광장에서 얻은 긍정적인 반응을 신경쓰며, 사랑제일교회의 공예배까지 광장예배 형식으로 변경하였다.
논란과 망언
전광훈은 종교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2005년에는 젊은 여자 집사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2019년 가을에는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발언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2020년 2월에는 "애국집회 참석하면 전염병도 낫는다"는 발언을 하여 공분을 샀다. 특히 그의 망언은 그가 정치적인 입장을 밝힐 때마다 불거지며, 그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2020년, 전광훈은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집회금지 명령과 방역 수칙을 어기고 집회를 강행했다. 그 결과 사랑제일교회는 코로나19 집단 감염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에 전광훈은 방역 방해의 대명사로 낙인찍혔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판했다. 또한, 그의 활동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추구하는 이념이 더 많은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난과 여론의 악화는 지속되었다.
정치적 활동
전광훈은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20년 들어서는 전국 각지를 돌며 기도회와 애국집회를 개최하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고 국민혁명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수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여 차기 기독교 우파 정권의 킹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며 자신을 선지자로 자처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활동은 그를 더욱 널리 알리게 되었고, 보수 세력 내에서는 그를 반문재인 장외투쟁 세력의 중요한 인물로 간주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국민혁명당을 창당하여 당 대표로 복귀하였고, 2023년에는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려고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전광훈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퍼뜨렸고, 이를 통해 많은 지지자를 결집시켰다.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50만 명 이상에 달하며, 그가 끌어들인 당원 수는 보수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비판과 분열
전광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그의 과격한 발언과 정치적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었으며, 특히 그가 교회 내에서 벌인 분란은 더욱 논란을 일으켰다. 여러 교단에서 그와의 교류를 금지하거나, 집회 참석을 금지하는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 그의 설교는 종종 이단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를 문제삼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위대한 한 지도자"에 대한 강조는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로 비춰지기도 했다.
전광훈은 자신의 신도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며, 이성을 버리고 맹종하는 것이 영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신도들에게 신앙의 기준을 제시하며, 교회 내에서 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교인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고, 사회적 비판을 초래했다.
결론
전광훈은 그의 극단적인 발언과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교회 내에서, 그리고 정치적 영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여러 번의 법적, 도덕적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그의 행동과 발언은
그를 지지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비판하는 이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