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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 제11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그에 대해 알아보자.

blogout 2025. 3. 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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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朴贊大, Park Chan-dae)는 1965년 5월 10일 경기도 인천시 주안출장소 용현동(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반남 박씨이며, 현재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 한별렉스힐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하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그리고 퀸스 대학교 벨파스트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병역은 육군 제31보병사단에서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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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력 및 주요 직위

 

박찬대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인천 연수구 갑 지역구에서 제20, 21, 2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제11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자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연수구 갑 지역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과거에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민주연구원 이사장과 감사직도 수행하였습니다.

전문 경력 및 가족

 

박찬대는 한국·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동회계법인과 삼일회계법인 국제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 회계감독국과 공시감독국 근무 경험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외조부 이동봉, 부모 박윤과 이월형, 배우자와 아들이 있습니다. 종교는 개신교(장로회, 예장통합)입니다.

박찬대: 대한민국의 회계사, 교수 출신 정치인

 

1. 생애


박찬대는 1967년 5월 10일,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3남 1녀 중 막내로, 부모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박찬대의 부모님은 그가 태어나기 직전에 인천으로 이주하여 용현동에 자리를 잡았다. 용현동에서 자란 박찬대는 인천용현초등학교, 인천대건중학교, 동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릴 적부터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으며,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반에 속할 정도로 예술적 소질을 보였지만, 가정 형편상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박찬대는 용현동에 위치한 인하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과에 1984년 입학했다. 그는 84학번으로, 정석장학생으로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아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그는 6월 민주항쟁과 전두환 정부 시기의 정치적 변동 속에서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들었고, 이를 계기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2. 군 복무와 학문적 경로


박찬대는 1988년 9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31보병사단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1990년 12월 27일,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그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1998년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과정 중, 박찬대는 경제와 회계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이 후의 경력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3. 회계사로서의 경력


박찬대는 1997년 대한민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1999년에는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국제적인 회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후, 박찬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와 제휴를 맺고, 세동회계법인에서 신입 연수를 받았다. 이 연수를 통해 그는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해외 경험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다국적 기업의 회계 및 재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박찬대는 이후 삼일회계법인 국제부와 금융감독원 기업공시국·회계감독국에서 근무하며 많은 실적을 쌓았다. 또한, 한미회계법인을 설립하여 부대표 및 경인지역본부장으로 활동했으며, 인천광역시 지역 경제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회계사로서의 능력은 기업 감사를 비롯해 인천광역시청 산업단지계획 심의위원, 인천환경공단,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 감사 등으로 발휘되었다.

4. 정계 입문


박찬대가 정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사건이었다. 당시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정성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정치적 열망을 결심으로 바꿔 놓았다. 그는 지역인천에서 정치적 관계를 맺으며, 점차 정치적 행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민주당 계열로 입당하여,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5. 정치 활동


박찬대의 정치 활동은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의 고향인 용현동이 포함된 남구을에 출마를 결심했으나, 여성 우선 공천 원칙에 따라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불만을 가졌지만, 당의 방침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그해 인천시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에는 당내 공부모임인 ‘돌바내(돌아보고 바라보고 내다보고)’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견문을 넓혔다.

 

2014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경선에서 연수구 지역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성실한 활동을 통해 당의 신망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수공천을 받아 연수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첫 승리를 이끌었다.

6.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


제20대 국회에 입성한 후, 박찬대는 교육위원회 및 정무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그는 상임위원회 및 본회의에 전부 출석하며,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을 수행하였다. 박찬대는 특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세금 문제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며, 회계사 출신으로서 후보자의 해명을 돕는 역할을 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박찬대는 단수공천을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인천 촌구석' 발언 등으로 국민의힘 후보의 실수에 대응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7. 원내대표 및 국회 리더십


2024년, 박찬대는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여, 사실상 단일 후보로 추대되었다. 2024년 5월 3일, 그는 제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원내대표로서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운영위원회를 민주당 몫으로 확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고, 22명의 원내대표단을 꾸려 개혁기동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혁적인 의정 활동을 강조했다.

 

2024년 6월, 그는 제22대 국회의 전반기 운영위원장에 선출되었고, 이후 이재명 당대표의 직무대행 역할을 맡았다. 또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탄핵 소추안 발의를 주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립했다. 그의 활동은 국회 내부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8. 결론


박찬대는 회계사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한 후, 험난한 정치 여정을 거쳐 원내대표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의 정치적 성과는 당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 또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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