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은 1976년 2월 8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중앙초등학교부터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호남대학교에서 스포츠레저학을 전공한 대한민국의 전직 야구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다. 1994년 해태 타이거즈에 고졸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그는 이후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를 거치며 한국프로야구에서 오랜 시간 활약했고, 주 포지션은 초기에 투수와 외야수였으나 후반기에는 주로 1루수와 지명타자로 활동했다. 현역 시절에는 187cm, 95kg의 체격과 우투우타 스타일로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은퇴 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LG 트윈스 등에서 타격코치로 활동한 바 있다.
2025년부터는 NC 다이노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예정이며, 계약 조건은 3년간 총 14억 원, 연봉 3억 원으로 알려졌다. 과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2016~2017)으로도 활동했으며, 선수 시절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지도자로서도 LG 트윈스에서 QC코치, 수석코치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고, 선수와 코치를 모두 경험한 인물로서 팀 운영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추고 있다.
그는 세 자녀를 둔 가장이며, 배우자 홍연실 씨와 함께 창원시에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으며,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팬들에게는 다양한 등장곡과 응원가로도 익숙한 인물로, 특히 NC 다이노스 시절 ‘아빠의 청춘’, ‘누나가 딱이야’ 등 유쾌한 곡들로 기억되고 있다. 풍부한 야구 인생과 지도자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감독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그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묵묵한 리더십의 결정체, 이호준: 타격에서 지도까지, 영원한 야구인의 길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관통하며, 수많은 영광과 좌절, 환호와 비판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나이가 있다. 전 해태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 그리고 NC 다이노스의 간판타자였고, 지금은 NC의 감독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는 야구인, 이호준. 그를 말할 때 우리는 단순한 타자의 스탯이나 경기 기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와 향기를 느낀다. 그가 걸어온 길은 타구 하나하나, 스윙 하나하나에 담긴 무언의 인내와 진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호준은 화려한 전광판의 이름이 되기보다, 타석 뒤의 묵묵한 그림자였다. 그는 “소리 없이 꾸준했다”는 표현으로 종종 정의된다. 1994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팀을 옮기고 포지션을 바꾸며, 숱한 고비를 넘었다. 때로는 ‘로또준’이라는 별명처럼 폭발적인 타점으로 팀을 구했고, 때로는 ‘34억짜리 경비원’이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오늘의 NC 감독 이호준을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그의 선수 시절 커리어는 때로는 찬란했고, 때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통산 300홈런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고도 골든글러브 하나 없이 은퇴한 타자. 2004년 단 한 번의 타점왕 타이틀이 그의 유일한 개인 수상 경력이라는 점은, 그가 얼마나 많은 시즌을 치열하게 소모해왔는지를 방증한다. 그러나 수치는 이호준을 다 담지 못한다. 창단 초기의 NC 다이노스에서 그가 보여준 정신적 리더십,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려는 고집과 철학은 기록에 남지 않지만 선수단의 심장으로 깊이 새겨졌다.
특히 이호준은 선수단 기강과 팀 분위기를 중시했다. “유니폼을 입은 순간부터는 팀에 대한 안 좋은 말은 하지 말자”는 그의 철칙은 단순한 규율을 넘어선 조직 문화였다. NC 다이노스라는 신생 구단이 짧은 시간 안에 강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호준, 이종욱, 손시헌 같은 베테랑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야구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이호준이 있었고, 그가 만들어낸 무언의 질서는 선수들을 성장시켰고 팬들에게 팀을 신뢰하게 했다.
이호준은 “좋은 선수가 되려면 진실된 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흘린 땀. 이 한 마디가 그가 야구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대변한다. 팬들의 열광이 없는 날에도, 경기 후 조용히 라커룸에서 샤워하던 그가 흘렸던 진실된 땀방울은 오늘의 감독 이호준을 있게 한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그의 별명들은 늘 양가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로또준', '또르노빌', '야동님'. 때로는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호준은 그런 이름들을 스스로의 무게로 다시 의미 있게 만들었다. SK 시절엔 야갤에서 '씹솩의 소울'로 불렸고, NC 이적 후에는 '호부지'라 불리며 팀의 아버지로 떠올랐다. 그 별명들 속엔 팬들의 애증, 기대, 그리고 결국엔 존경이 담겨 있다.
지도자로서의 이호준도 흥미롭다. 선수 시절의 징크스를 100개 이상 가졌던 이가, 이제는 팀 전체를 진두지휘하며 냉정하게 경기를 바라보는 감독이 되었다. 그는 단지 감독실에 앉아 전략을 짜는 것을 넘어서, 여전히 후배들과 함께 훈련장을 뛴다.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 제안을 거절하고 NC로 돌아온 것도 “후배들이 보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누군가는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그의 삶 전체가 후배들과 팀, 그리고 야구에 바치는 일기장이기에 그 선택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호준이 감독이 된 뒤 NC는 단순한 경기력 외에도 조직의 방향성과 문화 면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소통형 감독, 선수들과 직접 밥을 먹고 대화하려는 인간적인 리더십은 젊은 세대와 교감할 수 있는 새로운 야구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밥이나 먹자”고 말했을 뿐인데, 그 한 마디에 일본에서 귀국하고 운동장을 뛰겠다고 나서는 후배들. 그것이 이호준이 쌓아온 신뢰의 깊이다.
이호준은 아직도 가끔 자신의 고향팀 KIA를 언급하며, “연패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의 말에는 미련이 아닌 정이 담겨 있고, 경쟁심보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야구를 단순한 승패의 싸움으로 보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싸움, 인생의 축소판으로 여기는 철학이 그의 말과 행동 곳곳에 스며 있다.
결국, 프로야구는 실력 있는 선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팀을 끌고 가는 리더, 후배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선배, 팬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이호준은 그 모든 역할을 한 사람이다. 24년의 선수 생활, 무관의 제왕으로 끝난 커리어, 그리고 지금의 감독이라는 직함까지. 그는 명예가 아니라 진심으로 야구를 사랑했던 사람이고, 야구도 그를 끝내 배신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호준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자신만의 야구를 해 나갈 것이다. 때로는 감독석에서, 때로는 인터뷰 한 귀퉁이에서, 그리고 언젠가는 또 다른 야구인들을 키우는 스승으로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별명들 속에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진심’이다. 그는 늘 진심으로 야구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호준, 그는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가장 묵직한 이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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